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로이센의 조피 (문단 편집) === 망명 === 1917년 [[니콜라이 2세]]가 폐위당하자 [[콘스탄티노스 1세]] 또한 지지 세력을 잃었다. [[협상국]]의 위원장이었던 찰스 조나트는 그리스 정부에 콘스탄티노스 1세를 폐위시키고 [[요르요스 2세|요르요스 왕세자]]가 아닌 다른 왕자를 왕위에 세울 것을 건의했다.[* 요르요스 왕세자 또한 친독이었기 때문이었다.] 협상국의 침략이 두려웠던 콘스탄티노스 1세는 차남 [[알렉산드로스(그리스)|알렉산드로스 왕자]]에게 왕위를 내주고 궁전을 떠났다.[* 소피아는 이 때 알렉산드로스 왕자를 마지막으로 보았다고 한다.] 콘스탄티노스 1세와 소피아, 그리고 다섯 아이들은 [[스위스]]에 정착했다. 하지만 악화된 왕실의 재정상태와 망명 등으로 콘스탄티노스 1세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고, 1918년에는 [[스페인 독감]]에 걸려 죽을 뻔했다. 한편 그리스에 홀로 남겨진 [[알렉산드로스(그리스)|알렉산드로스]]는 정부의 방해로 망명한 가족들과 전혀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없었다. 그러던 중 알렉산드로스가 외국의 공주가 아닌 그리스의 귀족 아스파시아 마노스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국왕 부부와 정부는 모두 심히 실망했다. 소피아는 아스파시아의 신분이 높지 않은 것을 언짢아 했던 반면 정부 측에서는 [[영국]]과 가까워질 기회를 잃게 되어 아쉬워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